최근 몇일 사이에 관찰 경험이 아주 부재한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평소에 나의 내면만큼은 다른 주제들과 비교하여 관찰을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비교적 자신있다고 생각한 주제에서조차, 예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관찰의 측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사회에 진출할 욕심을 접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모색하려 고민을 거듭했다. 다른건 다 괜찮은데 경제적 독립이 가장 걱정되었다. 어떻게 사람을 안 만나고 돈을 벌 수 있을까? 만나더라도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직업이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작년 말 즈음에 잠깐 시도했다가 접어버린 프로그래밍 생각이 났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어떤 지식도 정보도 없지만 어쨌든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엄두가 안났다. 이전에도 스스로 코딩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진로로 잡고 도전했는데, 막상 깊이 들어가려하니 모든 설명들이 공중에 붕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드는 이유를 도무지 알기 어려웠으므로 프로그래밍 공부에 있어서 더 이상 진전이 있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직업의 선택에 있어서 프로그래밍이 아닌 다른 분야로 여지를 둘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막다른 길에 도달한 심정으로, 프로그래밍 지식을 몇몇 읽어보았다. 그러나 막막하고 붕 떠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예전과도 같았다. 도무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서 아주 기초적인 문장들 위주로 보다가 다음의 두 문장에 집중하게 되었다.
-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기계이다.
- 프로그램은 명령어들이 의미 있는 순서로 나열된 것이다.
(이 단순한 문장을 가지고 뭐가 이해가 안되서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문장들을 저 머나먼 세상의 이야기로 느낀다는 것은 엄연한 객관적 현상인데, 이를 부정만 하고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내가 생각해도 웃기고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초적인 문장일지라도 그것을 집중해서 생각하는 일은 정말 녹록치 않았다. 생각 파편들의 나열만이 계속되었는데, 그야말로 '파편'이여서 어떤 연결고리도 잃은 채 생명력을 모두 잃은 것들이었다. 몇 시간을 분투하다가 이번에는 컴퓨터에 대해 이미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들을 최대한 떠올려 보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내 눈 앞에는 아이패드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컴퓨터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컴퓨터를 놓고 최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다음의 1차적인 느낌들을 얻었다.
"아이패드를 앞에 두고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나 아무런 새로운 변화를 감지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는 아이패드의 어플을 켜서 펜슬로 글자를 써봤다. 나는 분명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고, 생각 끝에 그 변화를 새로운 '물리적 현상'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의 1차적인 생각은 곧 그 자체에 대한 또다른 의문을 낳았다.
"아이패드를 쳐다보기만 했을 때 아무런 새로운 현상이 없는 것으로 '인지했다.' 그러나 아이패드와 나를 둘러싼 이 공간에서 정말로 어떤 변화도 없었을까?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어떠한 빛의 파장이 내게 닿아서 변화를 줄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은 왜 무시되었을까? 그럼에도 아무런 현상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보고싶은 현상의 타입을 취사선택하여 관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볼드 처리된 텍스트의 내용은 내게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을 주었다. 아이패드를 컴퓨터로서 관찰할 때, 그 와중에도 관찰의 취사선택이 너무나 쉽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것은 그런 취사 선택이 일어난다는 것을 정작 나는 까마득하게 모르고 전체를 봤다고 잠시나마 착각했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려고 했을 뿐인데 정말 엇나간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내게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적어도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는 관찰의 중요성은 아주 크기 때문에, 관찰과 관련한 깨달음은 크든 작든 모두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 깨달음의 가치는 보다 일반적으로 적용될 것 같다.